조유성
Software Engineer Server Developer Frontend Developer UI Developer Full Stack Developer Developer OSS Lover 철학 전공자 구조주의자 직장인 ù̴̲̭̼n̴̡͔͍̏d̶̛͇̖̻̅̕e̴̬͇͖̊f̸̢͈͂͒ǐ̶̺̳ͅn̴̝̣̹͂͌e̸̟̯̒d̵̢̉ͅ

삼진그룹의 엑스트라들은 어디로 갔을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떨떠름한 메타-리얼리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보고 왔어요.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세계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짧은 생각을 조금 적어볼까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중에서 삼진그룹의 임직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화 되어가는 한국 사회를 구성합니다. 그룹 회장은 외국인 임원을 데려다 사장으로 앉히며 한국적인 재벌 경영을 일신해달라고 요구한 듯합니다. 막상 그렇게 들어앉은 사장은 사실 재벌 경영 일신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계화를 방패로 삼아 해외 자본에 회사를 팔아먹을 수 있겠다는 계획이 있을 뿐이죠. 부서장들은 되지도 않는 영어를 섞어가며 회의를 진행합니다. (유나의 표현을 빌려) ‘저부가가치’ 인력으로 분류되는 고졸 여성 직원들도 회사의 세계화 기조에 발맞추어 영어를 배워 스스로의 부가가치를 높여보려 합니다.

극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김영삼 정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세계화는 단순한 정부 방침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93년에 우루과이 라운드를 타결하고, 96년에는 OECD에 가입합니다. 사기업들은 토익 점수가 높은 직원을 뽑는 전형을 만들기도 합니다. 83년 해외여행자유화와 더불어 호황이 이어진 덕에 중산층도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면서 모종의 환상이 생겨나고 있었으리라고 쉽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살아 본 적 없는 시대이긴 합니다만, 세계화에 대한 열망은 거시적인 자본의 변화이면서 동시에 개인에게도 내재화된 어떤 욕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영화는 그런 개인의 욕망을 코메디로 연출합니다. 직장인 여성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큰 소리로 “Boys be ambitious”를 외치고, 그 시니컬한 유나도 파리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며, 마케팅 부장은 과장스럽게 영어를 섞어써가며 외국인 사장에 대한 선망 어린 시선을 보냅니다.

영어토익반

한편으로 영화는 결말에서 세계화된 경쟁에서 승리하는 ‘한국인’들을 보여줍니다. 회장은 글로벌 캐피탈 사람들에게 “양키 고 홈”이라고 일갈하고, 자영은 미숙한 영어이긴 해도 빌리 박 사장에게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외칩니다. 미국과 일본의 투기 자본 앞에서 여성 평직원들부터 50대 남성 부장단까지 단결합니다. 그들의 ‘계획’은 한국인 소액주주들의 투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가공의 승리가 이 영화의 코메디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는 사실이 조금 떨떠름합니다. 이런 승리를 ‘사이다’ 서사로서 재현하는 이 영화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세계화된 경쟁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리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승리의 서사는 메타적으로 리얼리티입니다.

1994년 11월 동남아 순방길에서 ‘시드니 구상’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계화’라는 말을 처음 대중화시킨 이후 우리의 경쟁 상대는 한국의 누군가가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 덴마크의 누군가가 되었다. (중략) 2007년 현재 한미 FTA의 타결 이후 정부가 내보내고 있는 광고의 문구는 이런 현실을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당신의 솜씨, 4900만의 식탁에만 오르기엔 너무 맛있습니다. 당신의 기술 10만 킬로미터의 도로만 달리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당신의 디자인, 90개의 백화점에만 걸리기엔 너무 멋집니다. 당신의 아이디어, 당신의 능력, 당신의 열정, 이제 더 큰 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넓힐 기회 - 세계와의 자유무역협정입니다!

(중략) 국민과 민족을 부르는 일은 위기를 타개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에서는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호명되는 국민과 민족이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즉 전세계적 차원의 경쟁, 세계화된 싸움에서 승리하지 위한 호명이다. ‘이제 우리들의 경쟁 상대는 전세계인이니, 우리 스스로 부가가치를 높입시다’ 같은 표현들은 이미 IMF 이전 김영삼 정권 때부터 등장하다가 IMF 이후에는 거의 대한민국 국시나 다름없게 됐다.

문강형준,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담론이 유행하기 시작한 김영삼 정부 이래로 한국 사회가 세계화를 받아들여온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호소였습니다. 마치 이 영화가 그리는 승리처럼 말이죠.

제가 이 메타-리얼리티를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만인 것 같다는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공들여서 묘사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신자유주의적 위협 앞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봉합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또 영화가 조명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군사 문화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완화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질문들에 회의적입니다.

주인공 3인

물론 픽션이 언제나 현실적으로 가능성 높은 이야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가 시사고발물이나 다큐멘터리도 아니고요. 그런데 서사 내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삼진그룹에서 토익 600점을 따지 못한 여성 직원들은 어떻게 된 걸까요? 우리의 주인공들 자영, 유나, 보람은 열심히 ‘노력’해서 ‘공정’하게 대리가 되었으니 정말 그것으로 해피엔딩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