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성
Software Engineer Server Developer Frontend Developer UI Developer Full Stack Developer Developer OSS Lover 철학 전공자 구조주의자 직장인 ù̴̲̭̼n̴̡͔͍̏d̶̛͇̖̻̅̕e̴̬͇͖̊f̸̢͈͂͒ǐ̶̺̳ͅn̴̝̣̹͂͌e̸̟̯̒d̵̢̉ͅ

바 안단테

아마도 작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친한 대학 선배와 합정에서 저녁을 먹고 따라 갔던 술집이 있었다.

합정의 끝자락, 다소 좁은 공간에서 위스키와 칵테일을 싸게 파는 클래식 바였다. 위스키 몇 종류를 마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일하는 이야기를 했다. 채용이 어렵다는 이야기. HR에도 잘 정립된 이론이 있다는 반응. MCMC 알고리즘에 대한 연상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그리고 다음주 주말이었다. 혼자서 같은 바를 찾았다. 이번에는 헬레니즘 철학사를 다루는 주황색 표지의 책을 들고. 날씨가 무척이나 찼는데, 좁은 바 안은 난방과 체온으로 따뜻했다.

우연히, ‘에피큐리언’이라는 헬레니즘 학파와 같은 이름을 가진 술이 있다는 걸 알았다.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철학자의 명성처럼 화려한 맛이 날까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에피쿠로스는 절제를 강조했음을 떠올리면 절묘한 방식으로 어울리는 맛이었다고 생각한다.

바텐더는 30대 후반 쯤으로 느껴지는 남자였다. 주문도 끊이지 않았고 꾸준히 말을 거는 손님도 있어서 바빠보였다. 음료를 서빙하고 빈 잔을 정리하는 보조 직원도 있었다. 바텐더보다 약간 어려보이는 여자였다. 살짝 졸린 목소리로 할로윈 이벤트를 뭘 하면 좋겠냐든가, 그런 질문을 걸어왔던 것 같다.

조금 취했다는 생각이 들어 외투를 입고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었다. 꽤나 즐거웠다. 사람이 적을 때 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마지막 방문이 된다. 코로나19의 재확산과 함께 바 안단테는 휴업에 들어갔다. 어느날부터는 지도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대학 선배는 뜻밖의 폐업 사유를 전해주었다. 바텐더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바 안단테의 주인이 두려움이 아닌 평화 속에서 잠들었기를 바란다.

에피쿠로스는 꽤나 영리한 딜레마 논증을 제시한다. 우리는 죽기 이전까지 죽음을 감각할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이란 감각의 소멸이므로, 일단 죽고 나면 우리는 무엇도 감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을 감각할 수 없다. 말 그대로의 의미로 ‘죽어서도’ 느낄 수 없는 대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감각한다. 그것은 일종의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 더이상 갈 수 없는 공간, 다시 만들 수 없는 관계.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상실이다.